며칠 전에는 네이버를 검색해 헌책방을 찾아갔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잠깐 본 뉴스의 일기예보에서는 장맛비라고 했지만, 그렇게 부르기에는 우스울 만큼 빗줄기가 약했고 다음 날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무더웠다. 그렇게 장맛비치고는 우습게 흩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찾아간 헌책방은 다섯 평 남짓한 작은 가게였다. 운 좋게도 내가 막 가게를 찾았을 때, 주인이 가게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가게 안을 들어서면서 문짝에 붙여진 작은 종이쪼가리에 눈이 갔다. 밭을 돌봐야하니 오후 세 시쯤에야 문을 연다는 공지였다. 주인은 농사꾼이었다. 그때서야 주인이 입고있던 갈옷이 눈에 띄었다. 갈옷은 감물을 들여 만든 제주의 민속의상이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집 근처에 갈옷을 만들어 파는 이가 살았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뜨거운 땡볕 아래 시큼한 단내를 골목 가득 풍기며 땅바닥에 널려있던 갈옷들이 생각난다. 헌책방 주인이 입고 있던 갈옷은 오래 입은 듯 그가 파는 책만큼이나 색이 바래 있었다.
책장 빼곡히 꽂혀있거나 바닥에 서로 다른 높이로 쌓여있는 헌책들은 들어앉은 시간만큼 묵은내를 풍겼고, 슬쩍 쓸어보면 손가락 끝에 까끌까끌한 먼지가 들러붙곤 했다. 그곳은 오래 전 제집처럼 드나들던 백까치라는 만화방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건 바로 책먼지 특유의 냄새 탓이었다.
책장에는 그곳에 팔린 이후로 아무도 다시 손을 대지 않았을 것 같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책들과 나의 십대를 떠올리게 하는 출간한지 수십 년이 지난 책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주인의 허락없이 함부로 만지지 마시오, 라는 메모가 함께 붙은 책들도 있었는데 짙누렇게 바랜 종이와 아교가 아닌 끈으로 엮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심지어는 주인장이 붙여놓은 메모조차도 쓰여진 지 이미 수년이 지난 듯 글자의 잉크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며 나는 다섯 권의 책을 골랐다. 애초에 찾고자 했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지만, 나름 만족했다. 다섯 권 모두 초판이라 헌책 특유의 묵은내가 상당했다. 다음 날, 책에 묻은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고서 볕이 좋은 옥상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잘 펼쳐놓았다. 한나절 온기를 품은 책은 먼지내가 온전히 가신 건 아니었지만, 뽀송뽀송 기분 좋은 촉감을 주었다.
책은 한 권당 3,500원이었다. 초판 당시의 정가를 생각하면 반값에 파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책 한 권이 만원을 훌쩍 넘곤 하니 싸게 산 셈이다. 책의 상태는 꽤 좋은 편이나 아쉽게도 그 누군가의 흔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 흔한 사인조차 없고 밑줄 하나 그어진 게 없다. (한 권만 전 주인의 이름과 생년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누가 언제 어떤 마음으로 사서 읽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첫 페이지나 마지막 페이지의 여백에 남길만한 짧은 메모, 가령 몇 년도에 샀다느니, 누구에게 선물을 받았다느니, 격려나 위로 혹은 다짐 같은 글 하나 전혀 없다. 짧은 고백 같은 것을 발견하면 대박인데…….
책을 사서 읽는 일은 매우 사적인 경험이다. 영화를 보는 일은 대개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서 잊는 일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세상에는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 자신과 함께 내밀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책에 적혀있는 누군가의 짧은 메모 혹은 어떤 문장에 비뚤비뚤 그어진 밑줄을 발견할 때면 마치 그이의 속마음을 슬쩍 엿보는 것 같다. 헌책을 사서 읽는 일은, 내게 있어서 그런 것이다. 단순히 책을 싸게 사서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책을 한때 소유했던 사람의 비밀스러운 순간을 슬쩍 들여다보는 것이다.
혹시라도 헌책방을 또 다시 뒤질 날이 온다면, 그때는 흥미로운 낙서로 가득한, 헌책다운 헌책을 사고 싶다.
뱀발: 이젠 헌책까지 수집하시오, 한숨지을…….
이제껏 산 책이나 꼼꼼히 읽으시오, 타박할 남편이 떠오른다.
남편, 할 말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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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으면서 저도 함께 헌책방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어요. 헌책에서 엿보는 누군가의 이야기 저도 좋아해요. 심지어 제 오랜 책에서 잊고있던 제 흔적만 발견해도 왠지 설레더라구요? :)